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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의 호국인물] 장인환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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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기념관은 3월의 호국인물로 장인환 의사를 선정하였다.

 

사진출처 독립기념관 / 사진제공 국가보훈처

 

장인환 의사는 1876310일 평안남도 평양군 대동면 선교리에서 태어났다. 1904년 하와이로 이민을 떠난 장 의사는 1906년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이주, ‘상항(上港: 샌프란시스코) 한인연합감리교회창립에 참여하고, 1907년 한인 독립운동단체인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19083, 대한제국 외교 고문으로 을사늑약 등을 체결하는데 일본을 도운 더럼 W. 스티븐스(Durham White Stevens)가 미국으로 귀국하여 일본의 한국 침략을 정당화하고 한국을 비난하는 발언을 하였다. 이에 샌프란시스코 지역 한인들이 항의하며 발언 철회와 사과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스티븐스는 무례한 태도로 일본의 한국 지배는 한국에 유익하다.’라는 궤변과 함께 사과를 거부하였다. 이후 장인환 의사는 스티븐스를 처단하기로 결심했다.

 

323, 스티븐스가 워싱턴으로 이동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페리 빌딩에 도착하자 장 의사는 거사를 준비했으나 스티븐스 처단을 준비한 또 다른 한인 전명운(田明雲)이 먼저 스티븐스를 저격하였다. 그러나 전명운의 권총은 불발되었고, 이에 스티븐스와 격투를 벌였다. 이 광경을 목격한 장인환 의사는 준비한 권총으로 스티븐스를 저격하였다(스티븐스 저격 의거). 장인환 의사의 저격에 치명상을 입은 스티븐스는 이틀 뒤 탄환제거 수술을 받던 중 사망했다.

 

체포된 장인환 의사는 미국 법정에서 25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동포사회의 끈질긴 석방운동과 모범적인 수형생활로 10년만인 19191월 가석방되었다. 가석방 후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 부회장, 민립대학후원회 발기인으로 참여하는 등 조국의 독립을 위해 분주히 활동하였다. 1927년 평양으로 귀국하여 고아원을 운영하였다가 다시 미국으로 귀환하였다. 1930522일 샌프란시스코의 병원에서 지병을 치료하던 중 타계하였다.

 

장인환 의사의 유해는 동포사회장으로 샌프란시스코 근교 사이프러스 묘지(Cypress Lawn Memorial Park)에 안장되었다. 1975년 국내로 봉환되어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묘역에 안장되었다. 정부는 장인환 의사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공로훈장 복장(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본 저작물은 국가보훈처에서 '2022년' 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보도자료를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정책브리핑 사이트 www.korea.kr 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